떠나는 길 Setting Out

언제부터인가 지도 보는 것을 좋아했다. 지도랑 노는 것을 좋아했다고 해야 할까 햇볕 따스한 날
환한 햇볕에 몸을 담그고 일상이 힘에 부쳐 힘들 때면 지도를 보곤 하였다.
수첩 뒤에 매달린 작은 지도부터 관광지도 그리고 묵직한 10만분의 일 지도까지 어느 것이던 좋았다.
지도를 펼쳐 놓고 길 따라 달리다 보면 내 몸은 어느새 차창으로 들어오는 오월의 바람에 나른해지고,
길 옆으로 흐르는 강물, 속리산 내장산 지리산을 넘어 단숨에 남해까지 내려가면 아름다운 다도해, 섬, 모래…
10만분의 일 지도를 펼치면 더 설레게 된다 .번호도 달고 있지 않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실핏줄처럼 퍼져있는 작은 길들,
그 곳엔 어떤 그리움이 펼쳐져 있을까
작은 길들은 꼬불꼬불 등고선을 타고 산을 향해 끊겨 있다. 이쯤에서 차에서 내려 걸어가기로 한다.
사람이 마냥 반가운 외딴 집에서 쫓아 나온 누렁이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눈 덮인 산 길을 걸어가다 보면
저 앞에 펼쳐진 파란 하늘에 눈이 부신다. 그 옆으로 얼어있는 계곡과 그 위에 쌓인 눈, 가끔씩 얼지 않은 웅덩이.
그 옆에 물 먹으러 내려 온듯한 동물의 작은 발자국.
가 본 곳은 가 본 대로. 모르는 곳이면 어때. 이렇게 눈앞에 떠오르는 것만으로도 가슴 뛰는데.
지도를 보고 꿈을 꾸며 어딘가에 이르고 싶다는 마음은 나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졌다.
바삐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이렇듯 간절하게 그리운 것은 무엇일까
나는 그 곳에 무엇이 있을 것만 같은 심정에서 나도 모르는 간절함의 대상을 찾아 떠나기로 했다.
지도를 보며 꿈 꾸었던 내 영혼의 위로
정작 그 길은 내 안으로 향한 어떤 것을 찾아가는 길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있는 터 였음에도
떠나는 길 얇은 천에 염료 40×35cm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