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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나무에 대한 서정 Being Lyrical About Poplar Trees

누구나 차를 타고 강변을 가다 보면 강가에 높고, 곧게 서있는

미루나무를 보았을 것이다.

나는 그 미루나무를 보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

강가의 미루나무.

예사롭고 가볍기조차한 이것에 꽤 흥분했었다.

그리고 그 감동을 실제로 그리기 까지는 참으로 조심스러웠다.

외로이 서 있는 미루나무와 물 안개 사이로 부옇게 보이는 늪지,

허전하게 젖어드는 적막감..

다분 사춘기 적이라 무심한 척 몰래 좋아해야 했는데,

드디어 그 짝사랑을 공개하게 된 것이다

 

 

내가 느끼는 미루나무는 정말 특별하다.

여름과 겨울, 푸른 강물과 논 사이의 미루나무도 아름답지만,

한 겨울에 보는 미루나무는 가시 같은 가지를 다 드러내고

차가운 강바람을 온 몸에 맞고있는데

그 처연한 모습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그러다 변할 것 같지않는 모습으로 서 있던 그 나무가

눈 쌓인 얼음이 풀리고 흐르는 강물에 봄 볕이 반짝일 때,

연두 빛에서 초록으로 싱그런 모습을 보이면

무감히 살아가던 사람들의 마음에 작은 파문을 그리지나 않을런지.

 

한때는 들 풀에, 한때는 붉은 흙에, 지금은 미루나무에 마음을 쏟는다 해도

열렬했던 사랑도 추억으로 남 듯

미루나무의 사랑도 결국은 그리움으로 남게 되는 것이

 

 

몇 개월 만에 다시 그 자리에 갔다.

그사이에 나는 내 사랑을 잃어버렸다.

좁은 길 사이로 오래된 전봇대와 어울리게 서있던 미루나무들은 온데간데없고

전봇대만 우스꽝스럽게 서있었다.

나는 한참을 서성이다가 잘려져 누워있는 미루나무를 발견했다.

사십이 가까운 나이에 잘려진 미루나무에 눈물 글썽거림이 남세스러워,

나는 또 한번 내 사랑을 감추고 돌아서야 했다.

 

 

돌아오는 길,

사계절을 통해 애틋한 사랑을 주던 강가의 그 미루나무를 가슴에 그렸다.

속수무책의 사랑은 또 다른 사랑에 마음 쏟을 지라도

그리움으로 남겨진 사랑은

가끔씩

시간의 흔들림 속에서 무심한 날 흔들어 깨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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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나무가 있는 풍경

얇은 천에 염료 48×55cm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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